각각 일제강점기와 장제스 치하 계엄기라는 역사적 사건 소재로
두 작품 모두 큰 호평 받으며 흥행... 역사적 내러티브 매력 입증

※ 이 기사는 영화 '파묘'와 게임 '반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파묘'의 스틸컷 (이미지 출처: 쇼박스)
영화 '파묘'의 스틸컷 (이미지 출처: 쇼박스)

이따금 비극은 아득히 먼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때로는 과거를 그저 과거로 치부하는 것 대신, 세월이라는 그늘 속에 가려져 있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

개봉 후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자도 얼마 전 그 길을 함께 했다.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게임이 하나 있다. 2017년 대만의 레드 캔들 게임즈가 출시한 게임 ‘반교(返校)’가 바로 그것이다. 두 작품 모두 공포, 특히 오컬트 장르의 작품으로, 시대와 무대는 다르지만 모두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의 주 소재로 삼는다. 또한 둘을 나란히 놓고 보면 드러나는 편린도 함께 찾을 수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영화 관람의 재미를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두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 일제강점기와 국민당 치하 계엄기, 두 사건이 남긴 역사적 흔적들

앞서 언급했듯 파묘와 반교의 공통점은 서사의 핵심적인 갈등이 실제 역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파묘는 단순한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제강점기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이야기상으로는 중반을 넘어가서야 그 내막이 드러나지만, 사실 영화 전반에서 이에 대한 암시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다. 주인공 4명의 이름, 고영근(유해진 役), 김상덕(최민식 役), 윤봉길(이도현 役), 이화림(김고은 役)은 모두 실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동일하다. 또한 이들의 차량 번호 역시 광복절 내지 3·1 운동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역사적 내러티브는 작품 후반에 이르러선 아예 핵심적인 소재로 자리 잡는다. 파묘의 후반 서사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전설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확실히 말하자면 이는 전설일 뿐 근거 없는 허구의 이야기로, 작품에서도 이를 충분히 명시하고 있다.

반교 역시 마찬가지다. 반교는 중국국민당(이하 국민당)의 ‘백색테러’가 한창이던 1960년대의 대만을 배경으로 하는데, 당시 대만에선 장제스 치하의 계엄령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게임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지하 독서회’는 국민당의 탄압에 맞서 ‘불온서적’을 탐구하던 가공의 단체다. 이들의 행위는 발각 시 사형에 처해질 수 있을 정도로 큰 중죄였다.

사실 말이 ‘불온서적’이지, 당시 국민당이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을 작가의 이름이 ‘칼 마르크스’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금서로 분류하고, 국공내전 패배 이후 중국에 대한 반발로 중국 지식인들이 번역한 서적들을 금지하는 등 무분별한 검열을 일삼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탐구가 마냥 반역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모종의 사건으로 국민당 세력에게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개중에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감된 이도 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도 있다. 팔과 다리가 묶인 채, 피로 물든 복면을 쓰고 힘없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게임 전반에서 공포 요소로 등장한다.

■ 구천을 떠도는 이매망량이 되어… 반교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

공통점을 살펴보았으니, 차이점도 찾아보자. 눈에 띄는 것은 갈등의 해소 여부다.

우여곡절 끝에 파묘의 갈등은 해소된다. 슬픈 역사의 잔재처럼, 인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과 상처를 남긴 채. 그래도 이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함께 모여 웃는다. 역사에서 비롯된 아픔을 함께 이겨냈다는 의미다.

반면 반교는 그렇지 못하다. 이는 그 제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반교(返校)’는 학교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며, 영문 제목 ‘Detention’은 벌로서 학교에 남는 것을 뜻한다. 두 제목의 병치를 통해 게임은 누군가가 죄에 대한 벌로 학교로 돌아가 남는다는 의미를 전하면서 동시에 학교를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와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이를 대비한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주인공 팡레이신은 지하 독서회의 존재를 국민당 세력에게 누설한 장본인이다. 물론 나름의 사연은 있다. 지독한 가정 불화와, 사랑했던 누군가를 빼앗겼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지하 독서회에 관련된 모든 이들이 체포되어 죽거나 다쳤다. 벗들을 나라에 판 배신자라는 낙인이 그녀 이름 옆에 붙었고,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죽은 이들의 넋은 이매망량(魑魅魍魎)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 팡레이신의 넋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자신의 죄에 대한 벌로서 기억을 모두 잃은 채 학교로 돌아가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고 죄책감에 짓눌려 죽기를 반복하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진다.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공허한 속죄만 되풀이하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것이다.

다만 영화화된 반교는 다른 노선을 취한다. 개인의 서사와 이야기 대신 이러한 비극이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갈등의 주체와 원인이 달라졌다. 이로 인해 속죄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영화화된 반교는 오히려 파묘와 닮은 결말을 맞는다는 점은 퍽 인상적이다.

2020년 국내 개봉한 영화 '반교'의 스틸컷
2020년 국내 개봉한 영화 '반교'의 스틸컷

■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

파묘와 반교 모두 관객 내지 이용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남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반교는 스팀 내 전체 이용자 중 95%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압도적으로 긍정적’ 등급을 받았으며, 파묘는 누적 관객수 천만 명을 앞두고 있다. 이는 역사를 소재로 한 내러티브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마따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된다(he one who does not remember history is bound to live through it again).” 이는 슬프고 아픈 역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파묘와 반교처럼 역사를 상기시킬 수 있는 작품이 꾸준히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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