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함인가 무관심인가

1월 2일.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업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결정을 내렸다. 올해부터 새롭게 발간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이하 IDC-11)에 '게임 장애' 코드를 새롭게 신설한 것이다. 

IDC-11에 따르면 '게임 장애'는 온라인게임 혹은 오프라인 게임 중 하나를 지속,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는 이들이 일상 생활이나 다른 활동보다 게임에 우선순위를 두고, 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우를 뜻한다.

ICD-11의 '게임 장애' 코드는 논의를 거쳐, 오는 5월 실시될 예정인 WHO 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아직 최종 결정이 되지 않은 사안임에도 이 소식은 유저들과 게임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한국 게임업계도 이와 같은 WHO의 결정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가뜩이나 게임업계에 대한 규제 법안이 지난 10여년 간 끊임 없이 거론됐다. 그 중에는 '매출에 대한 원천징수'를 언급하는 법안도 있을 정도로 한국 게임시장을 향한 다양한 규제가 있었기에, WHO의 이런 결정이 또 다른 게임업계 '규제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또한 5월에 '게임 장애'가 포함된 ICD-11이 WHO에서 최종 결정되면, 한국질병분류기호(KCD)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에 게임 중독을 질병코드로 분류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업계의 반발로 당초 입장에서 조금 물러섰는데, ICD-11에 '게임 장애'가 포함되게 되면 KCD 역시 개정될 공산이 크다. 이에 근거를 둔 또 다른 규제안이 고개를 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허나, 사안이 제법 중함에도 국내 게임업계에서 이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미국 게임협회(이하 ESA)가 즉각적으로 WHO의 결정에 반박하는 공식성명을 냈던 것과 비교된다. 

물론 한국게임산업협회가 WHO 결정에 대해 아예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것은 아니다. 사안이 대두됐던 초기에는 업계 차원에서 입장을 표명할것이라는 계획을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게임중독', '게임 장애'와 같은 사안에 대한 두 협회의 태도가 비교되는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ESA는 지난 2014년, 한국에서 발의된 게임중독법안에 대해 우려 입장을 표명했고, 2015년에는 아예 게임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단체들을 견제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게임과 폭력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기도 했다. '~~~을 하겠다!' 이후에 흐지부지되는 모습을 보이는 국내 협회와는 사뭇 대조되는 부분이다.

협회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다. 국내 게임사들 역시 WHO의 이런 움직임에 지난 한달간 딱히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으며, 이에 대비하는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워낙에 다양한 공격을 받아와서 이제 이 정도 위기는 무덤덤하게 넘기게 됐다고 억지스러운 이해를 하려는 부류도 있지만 정작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와중에도 가만히 있는 모습은 '묵묵함'보다는 '무관심'으로 비쳐진다.

WHO 총회까지 앞으로 약 3개월의 시간이 남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과연 한국 게임산업은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마냥 총회에서 IDC-11이 현행대로 통과되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기엔 사안이 마냥 가벼워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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