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억. 몇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 할 숫자

김한준 기자

[게임플] 1993년에 개봉한 영화 '서편제'가 서울관객 백만 명을 넘긴 것은 영화계에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지금 관점에서는 100만이라는 숫자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2의 서울관객 수가 92만 명 수준이었으며, 당시 환경이 지금처럼 극장이 흔하지 않고, 단관상영이 일반적이었으며,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은 존재도 안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서편제가 서울관객 백만 명을 동원한 것은 한국 영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영화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며 이제는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매년 하나 정도는 개봉되는 시대가 됐다. 매년 이런 소식이 전해지다보니 오히려 천만 명이라는 숫자가 대단하지 않게 여겨질 때도 있을 정도다.

서편제로 시작된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 인구가 5천만 명 남짓인 나라에서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매년 나올 정도의 영화의 위상을 보고 있으면 한국 게임산업이 겹쳐보이기 시작한다.

이번주 게임업계의 화두 중 하나는 '1천억 원'이다. 스마일게이트가 개발한 로스트아크의 개발비가 1천억 원이었고, 라이엇게임즈가 개관한 리그오브레전드 관련 문화공간인 롤파크(LOL Park)의 향후 운영경비가 1천억 원이었다. 

게임업계에 년간매출을 '조 단위'로 달성하는 기업이 나타나고, 툭하면 '조 단위'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發 소식이 전해지는 요즘인지라 1천억 원이라는 숫자가 자칫 별거 아닌 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천만관객을 달성한 영화의 소식에 무덤덤해진 것처럼 말이다. 

내 계좌에 있었으면 싶은 1천만 원은 큰 숫자임에도, 이상하게 뉴스에서 들려오는 1천억 원은 흔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1천억 원은 대단히 큰 숫자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최고 연봉을 받는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 선수 연봉이 25억 원인데, 이런 고액 연봉 선수인 이대호 선수가 40년간 현재 기량을 유지하며 지금의 연봉을 이어가야 달성할 수 있는 금액이 1천억 원이다. 

이대호 선수가 1982년에 태어났으니 올해 만 나이가 36세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 연봉을 받는 이대호 선수가 76세까지 현역 생활을 해야 달성할 수 있는 숫자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게임 개발에 70~80억 원이 투입됐다는 소식에 업계가 발칵 뒤집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상전벽해 수준의 현실이다. 

이런 거금을 게임 개발에 투입하고, 향후 10년간 문화공간 운영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게임산업이 크게 발전했다는 뜻이며, 많은 이들이 즐기는 문화로 자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양적성장은 이루었으나 질적성장도 함께 이루었는가?'에 대한 미심쩍은 궁금함도 자리잡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런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기반성은 천만관객 시대를 맞이한 영화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개발비 1천억 원 시대를 맞이했으나 그 안에는 '양산형 게임'이 쏟아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영화계 역시 천만관객 시대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조폭 코미디의 범람, 장르 편중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바 있다. 다른 두 업계의 이러한 평행이론은 제법 흥미롭게 여겨진다.

하지만 확연히 차이가 나는 부분도 존재한다. 천만관객을 맞이한 영화계와 1천억 원 시대를 맞이한 게임계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서편제 시절인 1993년 당시에도. 천만관객 영화가 매년 나오는 2018년 지금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다. 

언제쯤 이런 인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관객 2천만명을 돌파하는 영화가 나오기 전에는 '게임은 알고 보니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인식이 자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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